비들 베이스볼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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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의 박스 스코어(wikipedia. H. Chadwick)

 

 

1904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80번째 생일을 맞은 한 언론인에게 50년 동안 야구계에 남긴 업적과 공헌을 되새기며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그 주인공은 19세기 미국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포츠 라이터 채딕(H. Chadwick)이었다. 스포츠의 중심에는 선수가 있었지만 스포츠 역사의 중심에는 저널리스트들이 있었다. 채딕의 업적은 야구 가이드 편찬, 야구 기록의 통계적 정리, 야구의 역사 정립 등이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야구 통계분야의 업적이었다. 야구장에서 “KKK”라는 피켓이나 현수막을 보게 되면 채딕을 떠올리게 된다. 그가 처음으로 스트럭 아웃을 K로 표시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채딕은 1824년 잉글랜드 엑시터에서 출생했다. 12살 때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하여 브루클린에서 소년시절을 보낸 그는 아버지처럼 운명적으로 신문과 잡지에 기고를 하다가 스포츠 전문 기자가 되었다. 1844년부터 기고를 시작한 이래 『뉴욕타임스』를 비롯하여 많은 언론에 야구에 관한 글을 썼다. 1957년부터 『더 뉴욕클리퍼(The New York Clipper)』지(誌)에 야구 기자 및 통계전문가로 발탁되기도 했다. 펜 하나를 도구로 그가 야구 발전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아마추어 야구 통계학자 겸 야구 전문 라이터로서 글을 통해 야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다. 알코올과 도박에 찌든 야구의 정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최초의 야구 가이드  《비들 베이스볼 플레이어(The Beadle‘s Baseball Player)》를 편찬했다.

 

채딕이 야구 역사에서 빛나는 것은 야구 기록의 통계적 정리를 시도한 최초의 기자였기 때문이다. 1861년 『비들 가이드(Beadle guide)』에 유명한 선수의 아웃(outs), 런(runs), 홈런(home runs), 스트라이크아웃(strikeouts) 등에 관한 기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였다. 그것이 미국 최초의 야구 기록 데이터 베이스였다. 1867 워싱턴DC 야구클럽의 전국 투어에서 공식 기록 집계를 맡았고, 1874년 잉글랜드 투어에도 참가했으며, 1876년에는 야구의 박스 스코어(box score) 기록 방식을 고안하여 선보였다. 첫 박스 스코어는 9명의 선수를 나열하는 가로 9줄과 9이닝을 표시한 세로 9줄의 격자 표였다. 채딕은 표에 약어를 사용해 기록을 정리하던 어느 날 남들은 영문도 모를 K자를 사용했다. 그것은 스트라이크 표시였다. strike의 과거형인 ‘struck out’의 ‘struck’의 끝 철자 K를 사용했던 것이다. S를 쓰자니 희생타(sacrifice hit) S와 중복되었기 때문이다. 야구의 모든 박스 스코어 구조와 기초적인 포맷이 채딕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외 타율, 방어율 등에 관한 통계적 처리도 그가 처음 시도했다.

 

채딕은 야구 발전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생일 축하 메시지까지 받았고, 1938년 야구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그러나 1908년 사망하기 전까지 깊은 마음고생을 했다. 1860년 정확한 야구 기원설을 제시했으나 학계에서 무시당했고, 1903년 재차 야구는 영국의 라운더스(rounders)라는 놀이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주장했다가 미국 스포츠 국가주의자들로부터 냉대를 받으며 살았다. 1907년 더블데이 야구 창안설이 조작된 것임이 밝혀졌으나 이듬해 그는 죽음을 맞았다. 수많은 업적으로 훗날 미국 야구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으나 KKK라는 용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은 야구기원 논쟁에서는 KK를 당한 야구 타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야구 역사 속에는 KKK를 잡은 투수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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