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순수했는데… 나는 ‘파워블로거지’였다

처음엔 순수했는데… 나는 ‘파워블로거지’였다

처음엔 순수했는데… 나는 ‘파워블로거지’였다

지난 7월 16일 파워블로거(영향력이 큰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가 누리꾼들을 고소하겠다고 나선 사건이 일어났다. 주로 맛집 이야기를 쓰는 블로거인 그는 전주에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을 방문해서 겨우 고기 다섯 점을 먹었는데, 주인이 한 명분의 값을 지불하게 했다며 인심이 야박하다고 블로그에 적었다. 하지만 고깃집 주인은 블로거가 고기를 더 많이 먹었고 맥주까지 마시는 것이 CCTV에 찍혔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접한 몇몇 누리꾼들은 그 블로거가 ‘파워블로거지'(파워블로거와 거지의 합성어로, 파워블로거임을 내세워 무전취식이나 추가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 대부분 음식점을 타깃으로 한다) 아니냐는 글을 남겼고, 이를 본 블로거가 자신을 파워블로거지라고 비판한 누리꾼들을 고소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건을 접한 뒤 나는 묘한 죄책감(?)과 동질감을 느꼈다. 나 역시 파워블로거지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난 중학교 2학년 때인 2008년,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다. 한 화장품 브랜드의 블로그 서포터즈였다. 10대들만 할 수 있다는 서포터즈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해 블로그라는 걸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진 찍는 기술도, 글 쓰는 재주도 없었지만 그저 폼클렌징 하나 준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했다.

내가 쓴 게시물은 ‘홍보’ 그 이상은 아니었기에 블로그 방문자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내내 폼클렌징 걱정은 없었으니 소소한 결실은 맺었던 것 같다. 그 활동이 끝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몇 년간 블로그를 쉬었다.

다시 블로그를 시작한 건 지난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보다 이용 가능한 ‘잉여’시간이 늘다보니 무언가 기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블로그였다. 일상, 패션, 화장품, 음식 등의 주제로 블로그에 글을 쓰는 여성 블로거들이 많았다. 나는 그 중에서 중학교 때 접해본 화장품을 선택했다. ‘뷰티블로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이다.

우연한 ‘대박’에 이어 은밀하게 찾아온 유혹

 뷰티블로거 시절 받은 화장품들이 아직 이만큼 남아 있다
▲  뷰티블로거 시절 받은 화장품들이 아직 이만큼 남아 있다

처음에는 큰 욕심이 없었다. 난 그저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여대생일 뿐이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화장품들을 추천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씩 꾸준하게 글을 올리던 중 블로거로서 욕심 생기는 순간이 왔다. 방문자 수가 갑자기 급증한 것이다. 일반 블로거들이 파워블로거로 등극하는 건 방문자수와 댓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때인데 나 역시 그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블로그 방문자 수가 ‘대박’ 친 날은 A사의 아이라이너 후기를 올린 뒤였다. 난 화장품 중 아이라이너에 관심이 가장 많았다. 그래서 소셜커머스에 뜬, 번지지 않는다는 A사의 아이라이너를 사서 썼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용하자마자 이건 꼭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효과가 좋았기에 이런 감정을 모두 담아 글을 올렸다.

처음으로 하루 방문자 수가 500명이 넘었고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도 생겼다. 말 그대로 ‘핫’한 게시물이 된 거다. 댓글도 칭찬 일색이었다. 나와 같이 ‘외꺼풀’인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건 물론이다. 그 글은 몇 개월이 지나도 내 블로그 글 중 ‘검색유입’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나를 하루 방문자 수 500명 이상의 준(準)파워블로거로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는 탄탄대로였다. 일정 수준의 방문자 수가 계속 기록되자 먼저 친해지자며 ‘이웃(블로거들끼리 친구를 맺는 것)’을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굳이 ‘답방'(방문해준 사람의 블로그에 답으로 방문하는 것)을 하지 않더라도 먼저 댓글을 써주는 사람들도 늘었다. 그때 그 정도로 만족했다면 난 지금도 뷰티블로거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올해 1월, 은밀한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제목은 “특별한 뷰티블로거인 당신을 B로 초대합니다”. 뷰티블로거들 중 상위노출(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할 때 가장 위에 뜨는 곳)이 잘되는 곳들을 상대로 초대장을 보낸 것 같았다.

쉽지 않은 ‘특별한 뷰티블로거’의 삶… 역시 공짜는 없다

 뷰티블로거 초대메일 갈무리
▲  뷰티블로거 초대메일 갈무리

일종의 체험단 같은 걸로, B사의 화장품을 공짜로 받아 써보고 리뷰를 내 블로그에 올리면 되는 거였다. 블로그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은 화장품을 사게 된 터라 빈털터리였던 나는 그 유혹을 받아들였다. 난 다른 블로거들과 달리 냉정하고 솔직하게 리뷰를 쓸 테니 ‘홍보성’과는 상관없다고 장담하며.

‘특별한 뷰티블로거’의 삶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곳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블로그에 올릴 사진을 DSLR 카메라로 찍는 것은 물론 내용까지 알차게 쓰려고 했기 때문에 글 하나를 올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 방식은 무시당했다. 몇 십 명이 넘는 뷰티블로거들한테 시간경쟁을 시킨 거다.

선착순 30명, 선착순 50명 하는 식으로 끊어서 혜택을 줬다. 선착순 마감 전에 리뷰 글을 올리지 않으면 화장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내 일상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블로거들이 글을 올릴 때마다 시시때때로 날아오는 알림 문자 메시지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에도 눈치를 보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거다.

나는 B사뿐만 아니라 다른 바이럴 마케팅(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정보를 제공하여 기업의 신뢰도 및 인지도를 상승시키고 구매 욕구를 자극시키는 마케팅 방식)업체의 블로거로도 활동했다. 그동안 써둔 뷰티 블로그 글 덕에 캐스팅(?)을 당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물건을 받았지만 리뷰를 쓰는 과정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제목에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본문에 어떤 문장을 써야 하는지, 모든 것에 제한을 두고는 “블로거님 방식대로” 쓰라며 병 주고 약 줬다. 또 거기에 마감 기한까지 걸려 있으니 난 울며 겨자 먹기로 과제(?)를 수행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 받은 물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케이블방송 뷰티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던 수분크림이다. 인기가 좋았던 제품이라 리뷰 제안을 받자마자 하겠다고 연락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그 제품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수분크림이 속한 브랜드의 3가지 기초 화장품까지 덤으로 따라왔다.

친구들은 다 부러워했지만, 결국 블로그를 ‘엎었다’

리뷰 마감 기한은 겨우 3주. 수분크림 하나 공짜로 써보려다 필요 없는 물건들까지 다 받게 됐다. 그렇다고 화장품만 먹고 입을 싹 닦는 건 양심에 찔렸고, 난 기존에 쓰던 기초 화장품 사용을 중단하고 받은 물건들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건성인 내 피부 타입과 맞지 않는 지성용 제품이라 쓸수록 피부가 나빠졌다. 1주일 만에 사용을 중지했다. 결국 나는 바이럴 마케팅 업체에서 정해준 리뷰 형식에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글을 썼고, 이는 ‘댓글 0 검색유입 0’의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나 자신이 파워블로거인지 ‘파워블로거지’인지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화장품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거래’를 하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거다. 결국 난 블로그를 엎기로 했다. 더 이상 블로그에 나의 시간과 양심을 뺏기기 싫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뷰티블로거로 활동하는 것을 부러워했다. 특히 내가 받은 화장품을 얻어가는 친언니는 물론이고 주변 친구들까지 어떻게 블로그를 하냐고 묻기도 했고, 학교 교수님과 면담을 해도 내 블로그 얘기는 꼭 나오곤 했다. 교수님은 학교가 부산시를 대신해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다면서, 그걸 관리하던 학생이 그만두는데 이어서 관리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도 하셨다. 하지만 난 블로그를 엎었다는 말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과제일 뿐이었다.

이제 난 남들같이 세일 기간만 기다리는 한 여대생으로 돌아왔다. 후회하지는 않는다. 더 이상 난 파워블로거를 빙자한 ‘파워블로거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시 주변에서 파워블로거지를 보게 된다면 너무 비난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그들 역시 나처럼 일상에서 겪은 사소한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던 순수한 블로거였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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